제가 컴퓨터를 처음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이용하기 시작했던 1996년 당시엔 컴퓨터로 음악을 듣기 위해선 CD롬 드라이브에 음악 CD를 넣고 재생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Windows 95에 내장되어있던 CD재생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CD롬에 달려있던 재생버튼을 눌러주는것으로 간단히 음악을 들었었죠. (지금은 거의 모든 ODD가 원버튼 방식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재생을 위한 버튼이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을 중심으로 MP2 음악이 있었지만(Xing MPEG Player를 사용했었죠), 그건 어디까지나 이전 IMS로 열악한 음악을 듣는것처럼 부수적인 것이었고, 또한 1.2GB에 불과한 좁디좁은 하드디스크에 음악을 넣는것은 사치나 다름없었죠. 곧이어 MP3라는 파일형식을 PC통신을 통해 볼 수 있었지만,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또한 완전 종량제였던 전화선기반의 PC통신을 통해 3~4MB라는 대용량(!)을 다운받는것은 다음달 전화요금고지서를 통해서 세상과 등지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죠.

여전히 음악을 듣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음악CD였고, 간신히 MP3의 디코딩만 되던 당시 하드웨어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인코딩도 거의 불가능이었을뿐더러, PC통신을 통해 원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구할수도 없던 MP3는 단지 저에게 음악감상이라는 목적보다 새로운 기술을 접하는 장난감 그 자체에 불과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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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MP3를 재생했던 WinPlay3. 기본적으로 리스트 기능도 지원되지 않아 파일 하나하나 클릭해줘야 했었죠. 후에 플러그인 방식으로 리스트 기능이 지원되었습니다



이후 광대역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소리바다의 등장(해외에선 냅스터), 컴퓨터 성능의 향상으로 PC에서 손쉽게 MP3를 인코딩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서야 드디어 저는 음악 감상을 위해 CD를 버리고 MP3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PC에서 CD를 갈아끼우면서 음악을 듣는건 아무리 좋은 음질이라 하더라도 불편한 일이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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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Amp2.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히트쳤던 프로그램입니다.


역시나 MP3 재생 하면 바로 WinAmp2를 들 수 있겠죠. 가볍고, 기능도 다양했을뿐더러, 무료로도 쓸만했으며, 다양한 플러그인을 통해 PC가 대중적인 오디오장치로 인식되게 하는데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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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0여년이 지났습니다. MP3는 단지 파일형식에 그친게 아니라 현재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죠. 워크맨이나 CD플레이어, 혹은 MD를 구시대의 유물로 보내버리고 휴대용 음악플레이어의 주류로 당당히 자리잡은게 바로 MP3플레이어이며, 냅스터와 소리바다 사태를 통한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에 대해서도 환기시켰으며, iPod라는 물건을 통해 이미 한물 져가고 있다 생각한 Apple을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PC에서의 상황도 그에 맞게 변해갔죠. 전용 플레이어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던 MP3는 어느덧 운영체제에서 별다른 코덱을 깔지 않고서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CD는 처음 구입할때나 MP3 인코딩을 위해 한 번 개봉할 뿐 두번 열어보는 일이 없게 되었으며, 그나마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MP3 파일을 먼저 접하게 된다면 CD 자체를 구입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하드디스크 안의 MP3 파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숫자가 계속 늘어만 가게 되었으며, 그 어떤 파일보다 MP3 파일의 관리는 시급한 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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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0여개의 음악파일과 1,000여개의 폴더 속에서 원하는 음악을 찾기란 매우 성가신 일입니다.


여기서 바로 라이브러리 관리방식 플레이어의 필요성이 나왔죠. 이미 태생부터 태그를 포함하고 있었던 MP3가 얼마나 미래지향적이었는지, 왜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기존 폴더 방식의 관리체계를 가졌던 플레이어는 DOS - Windows에 익숙해왔던 유저에겐 더없이 직관적이었지만, 파일이 많아지고 폴더가 많아짐에 따라 원하는 음악을 찾는 일은 더없이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WinAmp는 2버전에서 3버전으로 올라갈 때 프로그램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져 수많은 사용자들이 떨어져 나갔고(개인적으로 엔드유저에게 있어 프로그램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프로그램의 무게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차후 논하도록 하죠), 포스트 WinAmp를 위한 수많은 플레이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iTunes의 성공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죠. iPod의 성공 뒤에는 iTunes가 있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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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unes의 스크린샷


하지만 iTunes는 이상하게도(?) Windows에서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감이 없지않았습니다. 버전이 높아질수록 나아지긴 했으나 Mac에서 사용했을때의 감각에 비하면 여전이 무거웠죠. 5로 버전업한 전통의 WinAmp, 가사지원이 강세인 알송, WinAmp에 이어 다양한 플러그인으로 떠오르는 Foobar, 다양한 음장지원이 주무기인 제트오디오 등에 비하면 iTunes는 아무리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가졌다 한들 주로 쓰기엔 굼뜰 정도로 무거운게 확실히 걸렸습니다.

* 이는 iTunes라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쓰기 위해서 Windows를 버리고 OS X로 오라는 애플의 전략일까요? 아니면 Apple을 견제하려 MS에서 Windows 안에 느리게 하는 코드를 끼워 넣은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퀵타임과 마찬가지로 Apple에서 개발한 Windows용 프로그램은 동급의 프로그램에 비해 확실히 무거운게 사실이죠.  :D

이때쯤 주목할 만한 대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Microsoft의 Windows Media Player 11이죠. Windows Media Player를 Windows 안에 낑궈 넣음으로써 반독점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Windows Media Player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주 초창기 윈미플이 동영상 감상용으로 잠시 쓰였던 적이 있긴 했으나, 곧이어 곰플레이어, KMP, 아드레날린 등 더 편리하면서도 가벼운 프로그램에 밀려 완전 마이너로 전락해 버렸고, 음악재생쪽에 있어서도 WinAmp에 밀려 아무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오직 성과라면 인터넷 스트리밍 분야에서 RealMedia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겠지만, 그나마도 요즘은 FLV파일에 밀려 점점 입지가 줄어들고 있죠.

하지만 라이브러리 관리방식을 쓰는 플레이어에 있어 11버전에 다다른 Windows Media Player는 상당히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앞에 말했던 속도 면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직관성 면에서도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오히려 iTunes보다 앞서고 말이죠. 안정성도 WMP10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습니다. (WMP10에서 라이브러리 모드 사용은 곧 프로그램의 에러 수준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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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 Media Player 11


물론 iTunes는 커버플로우 등에서 보여주듯 더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글쎄요... 그게 편리함으로 연관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치 Exposé와 Flip3D간의 구도가 입장을 바꿔서 OS X와 Windows에서 다시 나타난 느낌이랄까요? Flip3D는 화려하지만 불편하고, 반면 Exposé는 Flip3D에 비하면 수수하지만 직관적인데, 미디어플레이어에서 보이는 모습은 OS쪽과 달리 Apple과 Microsoft의 입장이 뒤바뀐 느낌입니다.

우선 속도야 각각 OS에 특화되어있다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실제 그렇구요. Windows에서 iTunes가 굼뜨다지만 Mac에서는 날아다니더군요.) 하지만 정작 원하는 앨범에서 음악을 선택할 때, 윈미플11은 큼지막한 아이콘을 선택하면 되는 반면, iTunes는 화면 윗쪽의 작은 글씨의 리스트를 스크롤을 내려가며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둘다 키워드를 통한 검색기능을 지원합니다만 어디까지나 마우스만을 통한 동작 기준입니다) 거기에 커버플로우는 보기에만 화려하지, 정작 음악검색용으로 쓰기엔 휠을 한없이 돌려야만 합니다. 원하는 음악을 찾기까지 윈미플이 대충 마우스로 큼지막한 앨범아트를 클릭해서 도달할 수 있는 반면, iTunes의 경우 작은 글자를 클릭할 정도로 세심하게 움직여야 하거나, 아니면 키보드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iTunes의 가치는 iStore과 iPod와 연계에 있지만, 일단 제 기준으로는 iStore를 사용할 일이 없고 iPod가 없기 때문에 그 장점이 상당히 묻히는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최초로 GUI를 대중화시킨 Apple이 유독 iTunes에서는 큼지막한 아이콘 그림 대신 작은 크기의 글자를 클릭하게 만들었는지는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고, 확실히 그 점에 있어선 Windows Media Player 11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죠. 직관적인 검색을 통한 원하는 음악에의 빠른 도달이 라이브러리 방식 음악재생 프로그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말입니다. (혹시 모릅니다. 요즘 iPod와 MacMini가 잔뜩 끌리는데 지름신이 도달하면 언제 iTunes로 다시 옮겨갈지...)

뭐 어디까지나 제일 중요한것은 이런것을 통해서 그간 익숙해졌던것이 가장 편리한것입니다. 때문에 여전히 폴더관리방식 음악플레이어가 많이 쓰이는 것이겠죠.

P.S. #1. 라이브러리 방식 음악재생 프로그램에는 심각한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용자 스스로가 각각 음악파일의 태그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죠. 라이브러리 방식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용자라면 이미 수많은 음악파일을 가지고 있을텐데 하나하나를 지정해주는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같은 경우 거의 한달에 걸쳐 태그 수정을 해줬을 정도니깐요. (물론 놀메놀메.... Thanks to Mp3tag!!)

그나마 영문권 가수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자동 태그 지정이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굳이 수정이 필요없을 정도로 라이브러리 구축이 잘 되어 있지만, 한국 가수의 경우엔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나마 한글이름일 경우는 낫지만 영문이름을 가진 가수의 경우 자동 태그 지정에만 맡겨놨다간 분명히 하나의 가수인데 몇개의 이름으로 쪼개지는 결과를 낳죠.

예를 들어 N.EX.T의 경우 N.EX.T로 지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넥스트, NEXT 등으로, DJ DOC의 경우 디제이덕, 디제이 디오씨, DJ DOC, DJ D.O.C... 대소문자까지 합하면 대책 없습니다.

P.S. #2. 요샌 사진관리 프로그램도 라이브러리 방식이더군요. 편리한건 알겠는데 이쪽은 대책이 없습니다. 한 1년 날잡아 지정해주는 수밖에요....


Posted by MaanM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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